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성찬식

교회에서 성찬식이 있었다. 성찬식은 늘 좋다.예전에 승동교회에서 진행되던 성찬식 설교에서 총신대 교수님이셨던 목사님이 성찬식에서는 은혜가 (주사 맞듯이) 주입된다는 설교를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승동교회 성찬식은 참으로 엄숙했다. 잔과 떡(사실 카스테라였는데)이 나누어질 때마다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본문을 엄숙히 읽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JOY에서는 예배위원들이 짝을 지어 빵과 포도주를 들고 앞에 서 있으면 길게 줄을 지어 나가 한 명이 떼어 준 빵을 다른 한 명이 들고 있는 잔에 담긴 포도주에 찍어 먹으며 자리로 들어왔다. 예배 위원들은 나지막히 'This is Jesus' flesh - This is Jesus' blood'하고 속삭여 주었지만 워낙 젊은 교회라 성찬식에 있어서도 분위기를 참 밝았던 것 같다.

루터교회 예배에서는 한 달에 두 번 성찬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아주 고전적이었다.(!) 오르간에 울리는 가운데 회중들이 양쪽으로 늘어서고 안내자에 따라 차례로 둥글게 만들어진 단상에 무릎을 꿇었다. 그 가운데에 있는 목사님께서 성체를 나누어주시고(대부분은 두 손으로 받았지만 몇몇은 직접 입에 넣어주셨다) 커다란 포도주잔을 차례로 마시도록 건네 주셨다. 포도 쥬스가 아닌 진짜 포도주였다. 지금도 커다란 잔 안에 있던 붉은 색 포도주와 그 맛이 느껴진다.
그 당시 나는 참 간절했다. "주님, 우리 가족은 의료보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 마시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포도주를 목으로 넘길 때마가 이런 기도를 드렸다. 주님의 피는 나를 지켜주시는 예방약이었던 셈이다.

오늘 성찬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미경아, 오늘 너에게 이런 가난함이 있느냐? 너무 가난해서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우기 원하는 그런 간절함이 있느냐? 의료보험이 있다한들,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질 들꽃과 같을 텐데...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또 지켜주시기를 기도했다.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

김대건 신부는 감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편지는 21통에 이르는 김대건 신부의 편자 가운데 유일한 우리글 편지이다. 그는 교우들이 돌려가면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중에서 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원래 제목은 ‘교우들 보아라.’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를 현대문으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교우들은 보십시오”

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벗이여,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아득한 태초로부터 천지만물을 지어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중에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까닭[爲者]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있더라도 쓸데없습니다.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의 은혜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겠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그 은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짓는다면 어찌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겠습니까.

 밭에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춰 밭을 갈고 거름을 주며, 더위에도 몸의 고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씨를 가꿉니다. 밭 거둘 때에 이르러서 곡식이 잘 되고 여물면, 땀 흘린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기뻐합니다. 곡식이 여물지 아니하고 밭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만 있다면, 주인은 땀 흘린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내고 들인 시간[工夫] 때문에 그 밭을 박대합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땅으로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을 벼로 삼으며,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시어 자라고 여물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주님의 은혜를 받아 여문 사람이 되었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아들[義子]로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물지 못하였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아들이라 하더라도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알아둡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려와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운다 한들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 승천 후 사도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두루 무수한 어려움 중에 자라왔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오륙십 여 년 동안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박해가 불길같이 일어나 여러 교우들과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 중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애통한 마음이 어찌 없겠으며,
 인간적인 정[肉情] 때문에 차마 이별하기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 했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 하셨습니다. 어찌 이렇듯 한 박해가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主命] 아니면, 주님의 상[主賞]이나 주님의 벌[主罰]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聖意]을 따르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遑遑] 이런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쟁터에 있음과 같이 하여, 우리도 싸워 이겨냅시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도우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립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爲主光榮],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해갑시다.

여기 감옥에 있는 20인은 아직 주님의 은총[主恩]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글[紙筆]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戰場)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을 만나 부디 마음을 허실(虛失)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主佑]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원수[三仇]를 대적하십시오.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큰 일[靈魂大事]을 경영하십시오. 이런 박해 때는 주님의 시험을 받아서, 세속과 마귀를 물리쳐서 덕행과 공로[德功]를 크게 세울 때입니다.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事]에서 물러나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난날 성인성녀들의 자취를 단단히 닦고 실천하여[萬萬修治], 성스러운 교회[聖敎會]의 영광을 더하십시오.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의로써 맺어진 아들이 됨을 증언하십시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님께서 가련히 여기실[矜憐]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말은 무수하지만, 있는 곳이 타당치 못하여 더 적지 못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입을 여러분의 입에 대어 사랑으로 입 맞춥니다[親口].


부주교[副監] 김 안드레아.

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영어 말하기 대회


예진이가 전날 참여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다고 전화를 했다. 내 처음 반응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어떤 마음이신지를 생각하며 묘한 경외심이 들었다.

사실, 예진이는 작년에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다. 주제도 훌륭했고 원고도 손색이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영어 실력이 뛰어난 큐티 모임 지체 중 한 명인 혜진 자매가 원고를 다듬어 주었고 주제는 무릎기도에서 얻었다.

예진이는 한반도 통일 뉴스를 전하는 CNN 뉴스 앵커와 각각 서울과 평양의 리포터 역할을 맡아 신나게 진행을 했다. 예진이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내가 프린트해서 우드락에 뉴스 화면도 만들었다.수상을 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로 신나고 멋진 경험이었다. 학교 대표로 나가서 할 때도, 하나님께서 이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전하고 싶으신가보다, 예진이가 도구로 쓰이다니 참 멋지고 감사한 일이라고 기뻐했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있으니, 예진이 본인으로서도 6학년이 되어 영어 말하기 대회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나갈까 학기초부터 관심이 많이 간 것이 사실이다. 학교 안에서 하는 작은 대회지만 6학년 마지막으로 하는 대회라느니 하는 의미를 덧붙이면서 대회를 나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온 공문을 보니 영어 말하기 대회는 참가 신청서와 함께 원고를 다섯부 복사해서 내야 했다. 예진이와 함께 영 안잡히는 주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다. 둘이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예진이가 소리내어 기도했다.
 "하나님,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주제를 뭐라할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세요."
여기서 내가 예진이를 쿡 찌르며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속삭였다.
 "주님, 상을 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주제를 주세요. 말씀해 주세요."
예진이가 그렇게 기도할 줄은 몰랐지만(내 생각으로는 예진이가 무척 상을 받고 싶어할 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기도하게 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다렸다.
 "엄마..."
"응... 난 아직 못들었는데..."
"엄마, 난 Pink Polar bear가 떠올랐어."
"그거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주제를 잡고 원고를 쓰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잔뜩 심리학 책을 빌려오기도 하고 원고를 빨리 써야 하지 않겠냐고 채근도 했지만 원고는 영 작성되지가 않았다. 결국 원고는 마감 전날 아빠의 도움으로 겨우 작성이 되었는데, 혜진 자매나 최소한 영어 학원 선생님에게라도 검토를 받게 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무척 화가 나는 일이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원고 제출 날짜를 하루 늦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화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은 금송아지를 가운데 놓고 통제불능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룬 출애굽기 본문의 큐티 덕분이었다. 그래도 예진이를 울릴 정도로 화를 내긴 했다.

결국 원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마음은 중요하고, 생각보다 통제하기 어렵고(여기서 Pink polar bear 예가 사용된다;사람들에게 Pink polar bear만 빼고 뭐든 생각하라고 할 경우 사람들은 노력하면 할 수록 Pink plar bear 생각만 하게 된다) 그리고 - 그러기에 노력을 들여 가꾸어어져야 하는 대상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의 예로는 갈라디아서 5장 17절의 성령의 열매 아홉가지를 넣었다.

 원고를 외우는 일도 발표 전날 겨우 했다. 집에 있는 마분지에 'Don't Think about a Pink Polar Bear!'라고 쓰고 반대편에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커다랗게 프린트 해서 붙였다. 예진이는 눈을 반짝이며 원고를 꽤 잘 외웠다. 이런 내용을 예진이가 외우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내고 발표하기까지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큐티모임에서 예진이 원고 이야기를 했는데 혜진 자매님이눈을 동그렇게 뜨며 혜진 자매의 아들 4학년 지훈이의 원고 내용도 마음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혜진 자매도 역시 기도하며 원고를 썼고,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까지 들어간, 지훈이의 매일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진이 원고와 전혀 겹치는 내용은 아니지만 같은 주제라는 것이 흥미로왔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것일까...

사실 최우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예진이가 당일 발표를 잘 했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마치고 나서 듣던 친구들이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할수록 분홍색 곰밖에 떠오르지 않았어."라고 이야기해주었단다.게다가 유력한 최우수상 후보였던 아이가 중간에 결정적 실수로 버벅였단다. (그 친구는 우수상을 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최우수상이었다.

  6학년과 4학년은 각각 다른 날에 발표를 했는데, 어제 지훈이가 최우수상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싶으시구나, 최소한 우리 믿는 엄마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 월요일, 예진이와 지훈이가 방송실에서 다시 발표를 한다. 엄마들은 수요일에 모여 기도할 것이다. 주님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으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주의 뜻을 알게 하소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 주소서.

2012년 4월 4일 수요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태연히, 명랑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마치 영주가 자신의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방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자유로이, 다정하게, 맑게
마치 명령하는 자가 나인 것처럼
간수들과 내가 대화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침착하게, 미소 지으며, 자랑스럽게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불행한 나날을 인내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하지만

나는 정말 그들이 말하는 자와 같은 자일까?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을까?
새장 속의 재같이 불안하고, 그리워하다 병들고
목이 졸린듯 숨쉬려 몸부림치고
아름다운 색채와 꽃과 새의 지저귐을 갈구하고
부드러운 대화와 인간적인 교제를 그리워하고
적의와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 가운데 몸이 떨리고
큰 일이 일어나리라는 헛된 기대에 사로잡히고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다 낙심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창작하는 데 지체 허탈에 빠지고
의기소침하여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려고 한다.

나는 누구일까? 전자일까 후자일까?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일까?
아니면 둘 다 모두 나일까?
사람들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긴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약자일까?
혹은 아직 내 속에 있는 것은
이미 승패가 난 싸움에서
흩어져 퇴각하는 패잔의 군대와 같은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누구이건 어떠한 자이건
오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오니

- 다이트리히 본 훼퍼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화이트 데이 선물




이런 거 잘 챙기지 않는데...
게다가 지난 발렌타인 데이에 신랑에게 준 초콜렛이 하필이면 세균이 기준치 14배 들었다고 하던 마켓오 초콜렛이었는데... 면목이 없네~

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올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아는 엄마들이 둘이나 JDS(온누리 교회에서 하는 예수 제자 학교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입학식에 예진이를 데리고 갔다. 가서 보니 말씀 카드를 뽑을 수 있도록 예쁜 상자에 정성을 들여 만든 말씀 카드가 담겨 있었다.
예진이가 뽑아 온 말씀을 보니 이렇다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3:5)


"어머, 예진아 너한테 딱인 말씀이다. 맨날 괜한 걱정 하느냐고 아무 것도 못하쟎니?
이 말씀 아주 외워, 외워!"
예진이에게 한바탕 설교하고 나도 한 장 뽑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예진이에게 한 말이 그대로 거울처럼 돌아와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되었다!

조금 틀린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니 시편 42편과 43편 5절은 똑같은 말씀이다 예진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말 성경으로 뽑게 해 주시고 나는 개역성경으로 뽑게 해 주셨다. 수준에 따라~(혹은 연령에 따라^^)

이 말씀을 한 해동안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다. 그리고 몇 주 후 갑자기 이모부를 심장마비로 잃은 이모를 위로하기 위해 편지와 함께 내 말씀 카드를 보냈다. 그 대신 큐티 노트 앞에 말씀을 깨끗이 베껴 놓았다. 예진이 말씀 카드는 예진이 책상에 예쁘게 얹혀져 있다. 요 아가씨가 걱정되는 일이 많을 때 말씀을 되풀이 읽으며 많이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축하 꽃



우리 집에 있는 난들이 하나씩 꽃대가 올라오더니
12월 내 생일과 1월 신랑 생일에 맞춰 하나씩 꽃을 피웠다.
2월에 있는 예진이 생일에 맟춰 나머지 하나도 피우려나 기다렸는데
제일 길게 올라오던 꽃대의 꽃망울이 터진 것은
결혼기념일 즈임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래 꽃다발은 신랑에게 받았다
꽃과 함께 받는 축하라니, 정말 행복하다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피자 없는 생일파티

예진이가 중이염에 걸려서
기름기를 최대한 자제했다. 인스턴트도 물론이고...
여튼, 먹는 것에서 주의해야 하는데
어디 나가지 않고 친구들 불러 집에서 생일을 치루었다.

하루 종일 만든 잡채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고
계란과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에 속을 만들고
한 쪽 면에 잼을 발라 낸 샌드위치가 인기였다.
남을 줄 알았던 김밥도 우리 아가씨들이 먹성 좋게 다 먹고
닭봉 구이는 두 팩이면 너무 모자랐다.
닭도리탕은 남았지만
파스타는 인기가 좋아 국수를 더 삶아야 했다.

케이크 대신 머핀을 사람 수대로 사서
특별히 얻어 온 초도 붙이고 노래도 하고
하나씩 들고 먹게 하니 케이크보다 나은 것 같다.

귤과 파인애플로 입가심!
준비한 게임도 하고 재미있게 끝이 났다.
차로 바래다 줄 수 있어서 보람되었던 파티!

어제 병원에 갔는데 귀가 깨끗해졌단다.
휴우우~~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래 사진은 예진이 생일 선물~
내 자신이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에~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친척들 이야기





외사촌 주영이 아기 지윤이를 보고 왔다
명숙 이모가 아기를 보는 얼굴이 보름달이시네
아가가 잘 자고 또 모유가 풍성한 주영이 덕에
특별히 힘들거나 바쁠 것은 없는데
아가 보느냐고 시간 가는 줄 몰라 하루가 짧으시단다

예전에 어머니가
나는 미경이 없이 살아도 예진이 없이는 못산다 하셨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가신단다

예진이가 미국 가고
한참동안 우울하셨다는 우리 어머니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내가 손녀만 보라고 너를 만들었겠느냐
하는 말씀을 들려주셔서 회복할 수 있으셨다니
예진이 사랑이 깊긴 깊었나 보다.





오늘은 오촌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다
사촌오빠네 가정이 미국 가서 사시기 전에는
항상 명절을 같이 보내고 또 많이 놀았던 조카다
신부에게 직접 축가를 불러주다가 천천히 다가가더니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진경아, 사랑해~ 하는데
예전 찬장을 기어올라가 설탕통을 뒤집에 엎던
그 장난꾸러기는 어디 갔나 싶다.
어리고 귀여워서, 볼이 통통해서
고모 고모 하고 따르던
밤준이라고 불렀던 조카 범준이~
결혼 축하합니다~

정작 무릎 꿇은 사진은 못 찍었다. 손발이 오글오글해서 그만~

2012년 2월 5일 일요일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정월 대보름이다. 나는 밤만 깠을 뿐인데 온갖 잡곡과 은행까지 들어간 찰밥과 다섯가지 나물에 무말랭이까지 싸 주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2012년 2월 3일 금요일

벌써 2월!


벌써 2012년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니 정말 세월 빠르다~
이렇게 엄벙덤벙 살면 안되는데...
좀 전에 남편 발령으로 요르단으로 간 친구 전화를 받았다.
거기 가자마자 김장 100Kg을 했단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하나님이 그 자매를 그 곳까지 보내신 이유가 전화 하는 중간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이리 남의 것을 잘 보이는 거야~

그래,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오늘 하고픈 말씀이 있으시겠지.
내가 두려울 때, 막연할 때 힘들때
"애, 이리 와서 나랑 얘기 좀 하자."하는
하나님의 다정한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2012년 2월 1일 수요일

맑고 환한 밤중에...(황혜선 개인전)






무릎 기도모임에서 PPT로 섬기는 황혜선 집사님의 개인전에 다녀왔다.추운 날씨였고 전철역을 착각하여 택시를 타긴 했지만 그래도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다.(도대체 신논현 역과 논현역이 같은 역인 줄 알았으니.... )

무릎에서 젊은 축에 들기 때문에 괜시리 친근감이 느껴지던 황혜성 집사님이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일본과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한 것을 약력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기 전까지 작품활동을 십 몇 년간 거의 하지 못하다가 회복의 은혜를 맛보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열게 된 작은 개인전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작품이 그 만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운데 있고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를 알려 준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