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7일 금요일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

김대건 신부는 감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편지는 21통에 이르는 김대건 신부의 편자 가운데 유일한 우리글 편지이다. 그는 교우들이 돌려가면서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중에서 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원래 제목은 ‘교우들 보아라.’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를 현대문으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교우들은 보십시오”

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벗이여,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아득한 태초로부터 천지만물을 지어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중에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까닭[爲者]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있더라도 쓸데없습니다.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의 은혜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겠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그 은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짓는다면 어찌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겠습니까.

 밭에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춰 밭을 갈고 거름을 주며, 더위에도 몸의 고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씨를 가꿉니다. 밭 거둘 때에 이르러서 곡식이 잘 되고 여물면, 땀 흘린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기뻐합니다. 곡식이 여물지 아니하고 밭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만 있다면, 주인은 땀 흘린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내고 들인 시간[工夫] 때문에 그 밭을 박대합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땅으로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을 벼로 삼으며,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시어 자라고 여물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주님의 은혜를 받아 여문 사람이 되었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아들[義子]로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물지 못하였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아들이라 하더라도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알아둡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려와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운다 한들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 승천 후 사도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두루 무수한 어려움 중에 자라왔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오륙십 여 년 동안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박해가 불길같이 일어나 여러 교우들과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 중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애통한 마음이 어찌 없겠으며,
 인간적인 정[肉情] 때문에 차마 이별하기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 했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 하셨습니다. 어찌 이렇듯 한 박해가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主命] 아니면, 주님의 상[主賞]이나 주님의 벌[主罰]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聖意]을 따르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遑遑] 이런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쟁터에 있음과 같이 하여, 우리도 싸워 이겨냅시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도우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립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爲主光榮],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해갑시다.

여기 감옥에 있는 20인은 아직 주님의 은총[主恩]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글[紙筆]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戰場)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을 만나 부디 마음을 허실(虛失)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主佑]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원수[三仇]를 대적하십시오.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큰 일[靈魂大事]을 경영하십시오. 이런 박해 때는 주님의 시험을 받아서, 세속과 마귀를 물리쳐서 덕행과 공로[德功]를 크게 세울 때입니다.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事]에서 물러나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난날 성인성녀들의 자취를 단단히 닦고 실천하여[萬萬修治], 성스러운 교회[聖敎會]의 영광을 더하십시오.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의로써 맺어진 아들이 됨을 증언하십시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님께서 가련히 여기실[矜憐]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말은 무수하지만, 있는 곳이 타당치 못하여 더 적지 못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입을 여러분의 입에 대어 사랑으로 입 맞춥니다[親口].


부주교[副監] 김 안드레아.